내가 '짬타이거'라는 명칭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일병계급장을 달았던 1999년. 그 찌는듯한 여름의 악취 나는 짬통 근처였다. 몇 달 위의 고참과 취사장 뒤편의 짬통 근처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나누었던 대화는 '밀레니엄이 오면 정말 세상이 망할까' 라던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관련된 쓰잘데기 없는 것들 이었다. 아무튼 고참과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던 즈음 그가 나에게 뒤를 돌아다보라고 했다.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뜨거운 흙 바닥 저 쪽에서 한 마리의 정체 모를 짐승이 상당히 느린 걸음걸이로 짬통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짐승이 짬통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것은 짬밥을 훔쳐먹고 돼지처럼 살이 뒤룩뒤룩 찐 고양이었던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어슬렁 어슬렁 걸음처럼 고참의 나른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설명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잘 봐. 저 녀석이 '짬타이거'다. 여타의 짭밥을 훔쳐먹는 고양이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지. 동네 고양이들은 그에 대한 복종의 의미로 짬타이거의 시식 후에야 짬밥에 접근할 수 있어. 짬통 구석이나 저기 벽 너머를 자세히 봐. 고양이들이 눈치를 보고 숨어있다."

그의 말처럼 예닐곱 마리의 고양이들이 짬타이거의 행동반경에서 몇미터쯤 벗어난 곳에 경계의 모습으로 조용히 은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짬타이거는 그 이름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하지만 꾸역꾸역 많이도 쳐먹으며 여유로운 식사를 즐겼다.

따가운 초여름의 햇살 속에서 일을 하던 군바리와 음식 쉰내를 풍기는 짬통 근처에서 제왕으로 군림하던 짬타이거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고 짬타이거의 모습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고참과 나는 그녀석의 은신처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우리는 고양이가, 아니 호랑이가 곰처럼 동면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도 해보았다. 녀석은 이름만 짬타이거일 뿐 습성은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지금쯤 어느 뜨듯한 아궁이나 식당의 구석에 짱박혀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이후에 나는 짬타이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취사병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추워서 소변이라도 볼라치면 꼬치가 얼어붙을 지경이었던 연천의 어느 겨울. 취사지원을 나가서 식당 부엌에서 양파를 까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에 짬타이거의 이야기가 나왔다.

"긍께말이여. 늦가을이던가... 그 돼지가 짬통 주위에 떨어진걸 주어먹는 걸로는 성이 안찼나벼. 아무튼 그 몸을 가지고 워케 했는지는 몰라도 암튼 짬통 안으로 뛰어들었나벼. 근디 그날따라 국물이 많이 남아서 질척거리는 짬통이라 쳐먹다가 뒤졌는지 몰라도 짬통에서 빠져 죽은걸 내가 건져내서 버려부렀어. 신기허데. 그 돼지가 거기 어떻게 들어간겨? 도대체..."

장렬한 최후였다. 짬타이거는 자신의 최후를 짬통 안에서 맞이한 것이다. 짬타이거에게는 샹그릴라였을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댓가치고는 너무도 비쌌지만, 제왕 짬타이거에게 그 정도의 명예로운 죽음은 적절한 것이라 생각했다. 고참은 내 얘기를 전해 듣고는 역시 짬타이거다운 최후라는 짧은 평을 남겼다.

봄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상병쯤 됐었을 것이다. 짬통에는 짬타이거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군주가 강림했고, 나는 후임병을 데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밀레니엄이 되어도 세상이 하나도 바뀐 거 없다며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후임병에게 고참이 했던 것처럼 짬타이거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고 후임병은 놀란 눈으로 돼지 같은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녀석. 저런 돼지 고양이는 태어나서 처음 봤을거다. 놀라기는.

Posted by 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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